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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 아침식사대용 구독서비스, 전단지로 시작

카카오 여민수 대표가 향후 10년 동안은 '컨텐츠' 와 '구독서비스' 에 집중을 해 야한다고 언급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구독서비스를 우리가 런칭한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독서모임 직장인 참여자 분께서 아침을 챙겨 먹기가 힘들어서 늘 빵이나 샌드위치로 끼니를 해결하거나 그냥 거른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간편하면서도 영양을 채워주는 제품들도 여럿 출시되어있는데, 찾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걸 잘 모르는 듯했다. 그래서 식사대용 쉐이크 제품과 비타민이 함유된 젤리, 그리고 다들 챙겨 먹는 유산균을 패키지로 묶어 배달해주는 구독 서비스가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즉시 구성한 패키지로 전단지를 만들었다. 3개월 동안은 4900 원에 해주겠다는 파격적인 조건도 내걸었다. 그리고 나서는 전단지를 나누어줄 장소를 물색했는데, 우리의 주요 타겟층인 직장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서울대입구역과 봉천역 사이 관악구에서 우선 시작해보기로 결정했다.
전단지를 언제 나누어주는가도 중요했는데, 직장인들이 출근하는 아침 시간에는 너무 정신이 없기 때문에 전단지를 자세히 보지 않을 것 같았다. 우리는 퇴근 시간에 맞추어 역 앞과 골목에서 전단지를 나누어주기로 했다.
헬스장, 고깃집 사장님들이 전단지 나누어주는 영상을 보고 따라해보기도 하고, 멘트도 바꿔가며 전단지를 돌렸다.약 1,000장 정도 뿌리니 5명에게 연락이 왔고, 2명이 실제 구독 서비스를 신청했다.
사실 효율적인 면에서 보면 ROI(수익성지표) 가 정말 떨어지는 결과였다. 하지만 함께 무언가 열정을 쏟아 시도하고 있다는 자체가 기뻤다.
우연히 도산대로에 위치한 회사를 다니고 있는 지인에게 아침 식사 대용 구독 서비스에 대해 얘기를 했는데, 회사 동료들 중에 아침을 거르거나 점심에도 간단하게 샐러드를 먹는 사람이 꽤나 많다며 수요가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그 말을 들은 바로 다음 날 우리는 점심 식사 시간 직전에 맞춰 신사동에 도착했다.
그당시 유명한 마케팅 회사가 신사동 도산대로에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케팅 회사일 뿐더러 회사 특성상 젊은 세대가 많을 것 같아서 제일 먼저 들어가보기로 했다. 그 회사는 12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11층과 12층 사이를 얼마나 왔다갔다 했는지 모른다. 한 번 쪽팔리고 말면 될 것을 그 용기가 나지 않아 비상구에 서서 가슴을 졸였다.
그렇게 한참을 망설이다, 문득 어차피 여기서 포기하고 나가면 후회로 밤을 지새울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12층으로 올라갔다. 지문인지 카드인지를 찍고 들어가게 되어있어, 직원 한 명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이윽고 한 직원이 화장실을 간다고 문밖으로 나왔고, 우린 그때 잽싸게 들어가서 밀 키트를 들고 외쳤다.
“안녕하세요!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인데요!”
15명 정도의 인원이 모두 우리를 쳐다봤다. 우리는 달달 떨면서 밀키트를 설명했다.
직원들은 회의 중이고, 점심 식사를 이미 주문해둬서 밀키트는 따로 필요하지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12층에서 1층을 내려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리는 묘한 희열감에 휩싸였다. 뭐든지 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이 이야기가 언젠가 꼭 쓰일 날이 오겠단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런데 이것도 사실 잠시의 기분이었다. 땡볕에 도산대로를 걸어다니며 카페, 부동산, 식당 심지어는 주유소까지도 가서 밀키트를 홍보해봤지만 하나도 팔리지 않았다. 속상한 마음이 우리를 뒤흔들 때쯤 우리는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중, 정류장 뒤쪽에 위치한 의상실이 눈에 들어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배우 나문희 여사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의 의상실이었다. 우린 눈이 마주쳤고 내가 말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저기 들어가보고 집에 가야겠지..?”
용기를 내서 화려하게 장식된 문을 열었다. 그런데 웬걸, 건장한 청년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30대처럼 보이는 실장은 우리 서비스에 대해 굉장한 관심을 가졌고, 열정을 가지고 뭐든 시도하는 우리를 응원해줬다. 우리의 밀 키트 구독서비스의 첫 고객이 되어준 것이다. 그렇게 인연이 시작되었다.
알고보니 그곳은 고 앙드레김 선생님의 의상실이었다. 앙드레김 선생님의 제자였던 그 청년은 이후 노들섬에서 진행되는 패션쇼에도 우리를 초대해줬다.
그 날 신사동 도산대로를 가지 않았다면, 아침 식사 대용 구독서비스를 생각만 하고 실행해보지 않았다면, 그냥 핸드폰 보면서 기다리다 버스를 타고 집에 갔다면 만나지 못할 인연을, 우리는 시도해서, 노력해서 만들었다.
결론적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며 가졌던 강렬한 느낌은 현실이 되었다. 지금 이렇게 전자책의 한 챕터가 되었으니 말이다.
이 에피소드는 성공한 사업가 선배들을 만날 때 이야기 주제로도 많이 쓰이게 되었는데, 이 이야기로 우리를 재평가해주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할까 말까 할 때는 그냥 해라. 갈까 말까 할 때는 그냥 가라. ‘깡’ 을 키우는데는 이만한 원칙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