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Ep.10] 죄책감 없는 파티를 열다

독서모임, 전자책, 강연을 통해 조금씩 린치핀을 좋아해주는 분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기존의 독서모임은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확장시키는 커뮤니티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부담없이 제공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모임비를 거의 받지 않거나 유지비 정도만 받아왔었다. 하지만 수익화는 꼭 필요했다. 린치핀 크루들에게도 명분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가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가치는 어떤 게 있을까 고민했다. 우리는 조금 더 동적으로 정신적 쾌락을 추구하는 행사를 열기로 했다. 일명 ‘죄책감 없는 파티’.
쾌락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육체적, 물질적 쾌락 그리고 정신적 쾌락. 육체적, 물질적 쾌락은 일시적이다. 이를테면 포르쉐를 구입하면 3년 간은 꿈만 같고 기쁘겠지만, 그 기쁨은 이내 람보르기니를 타고 싶다는 욕구로 바뀐다. 그러나 정신적 쾌락은 지성을 높이고, 자원이 유한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기 때문에 마음에 평화와 안정을 준다.
우리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사람들과 정신적 쾌락을 추구하는 파티를 열기로 한 것이다. 물론 만나서 진지한 얘기만 나누면, 수요가 반절로 줄기 때문에 우리는 1 . 맛있고, 2 . 재밌고, 3 . 유익한 파티로 세 가지 컨셉을 정했다.
1 . 맛있고 우리는 파티를 할 때 배달음식을 먹지 않았다. 항상 그 테마에 맞는 음식을 직접 함께 만들었다. 컨셉이 레트로 파티면 떡볶이, 순대, 어묵바 같은 걸 준비하고 크리스마스 파티면 스테이크나 파스타를 함께 만들었다.
어떤 책에선가 낯선 사람들이 만나 하나의 완성작을 만들면 급격하게 서로 친밀감을 느낀다고 했었는데, 역시나 요리는 늘 아이스 브레이킹의 큰 부스터가 되어주었다. 서로 만든 요리를 나눠 먹으며 급격하게 가까워졌고 본격적인 파티 이전에 유연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입이 열리면 마음이 열린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2 . 재밌고 우리는 2 주에 한 번씩 파티 콘텐츠를 짜는 아이디어 회의를 했다. 한 번도 컨셉은 겹친 적이 없었다. 방학이 끝나갈 무렵 진행한 방학 장례식, 옷까지 90년대로 돌아간 레트로 파티, 야외에서 진행한 피크닉 파티 등 우리는 제일 먼저 사람들이 재미있어할 컨셉을 기획했다. 그리고 컨셉에 맞는 드레스코드와 게임을 짰다. 게임은 보통 아이스 브레이킹을 목적으로 런닝맨이나 신서유기 같은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게임이나 보드게임을 주로 했는데, 성인이 되어 이런 게임을 경험할 일이 잘 없다 보니 다들 좋아했던 것 같다.
3 . 유익하고 3 번째 컨셉이 다른 파티들과 가장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컨셉에 맞는 콘텐츠를 짰는데, 이를테면 레트로 파티 때는 부루마블 보드게임을 컨텐츠로 녹여냈다. 원래 부루마블 각 칸에 있는 나라와 도시 이름을 빼고 책이나 세미나에서 나오는 본질적인 질문, 나를 돌아보게 하는 질문들을 채워넣었다.
내 삶의 가장 중요한 단 한 가지는?
나를 색깔로 표현한다면?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은?
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각자 현실의 바쁜 삶을 살아가며, 서로에게 무심해진다. 내 안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들어주는 사람이 잘 없어서, 말을 아끼게 된다.
‘죄책감 없는 파티’ 를 오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생각을 정리하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인사이트를 얻어갔다.
우리 파티에 온 사람들은 집에 돌아가서 ‘ 오늘도 놀기만 했네. 책 한 자라도 더 봐야했는데...’ 가 아닌, ‘ 오늘도 많이 배웠다. 일주일 또 열심히 살아야지!’ 라는 생각을 했다. 놀기만 했을 때 남는 그 무의미함과 찝찝함이 없으니 비용을 지불하고서도 계속 파티에 오고 싶어 했다.